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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인간

?먹먹하다.책장을 덮으면서 먹먹함이 나를 짓눌러 스산함이 되었다.“저널리즘과 문학이 아름답게 결합한 명저”책 뒷표지에 써져 있는 말 그대로다. 기자인 헨미 요가 먹는다는 행위를 보기 위해 전세계로 떠난 기행기. 그래서 르포 같은 느낌이려나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이 사람 문학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아서 밑줄, 먹먹해지는 현실이 많아서 밑줄. 책이 온통 밑줄이다.먹는다는 행위를 쫓는 이 책에는 유쾌하면서 적나라하고 무겁고 즐겁고 만라만상의 인간들이 나온다. 먹는다는 건 무얼까.나는 먹는 걸 좋아한다. 밥을 먹으면서 다음 끼니 메뉴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끔찍해 하기도 한다. 다양한 음식이 있다는 것에 행복함을 느끼면서 먹방을 보면서 맛집을 찾고 배달앱을 뒤지면서도 캡슐로 음식을 대체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짐승은 먹이를 먹고, 인간은 음식을 먹는다.”라고 말한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의 말에 헨미 요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도 가끔 짐승과 똑같이 ‘먹이를 먹는다’.” 이 말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헨미 요는 부자들이 먹다 남은 밥을 돈을 주고 사먹는 방글라데시, 패전한 줄 모르고 숨어있던 일본 병사들에게 사람이 먹힌 역사가 있는 필리핀 등 아시아를 시작으로 갈등하는 유럽을 지나 기아로, 에이즈로 사람이 죽어가는 아프리카를 거쳐 방사능이 있어도 사람이 먹고 살고 있는 체르노빌을 간다. 그리고 한국을 온다. 위안부 할머니를 만난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한다. 90년대에 쓴 이 책과 지금과 그리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세세한 지난 역사는 지금도 그 분들 기억 속에 계속 흐르고 있다.읽는 내내 서경식 선생의 디아스포라 기행이 떠올랐다. 헨미 요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졌는데 국내에는 이 책 한편이라 아쉽다.

‘먹다’라는 주제로 ‘생(生)의 근원’을 탐구한 명저. 이 책은 교도통신 외신부 데스크로 일하던 헨미 요(?見庸)가 1992년 말부터 1994년 봄까지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사람과 음식에 관한 현장 보고로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교도통신 칼럼으로 연재되던 당시 화제를 불러일으키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된 후에 비평가들의 절찬을 받은 저자의 대표작이기도 하다.저자는 ‘먹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역사, 정치, 사회적으로 분쟁을 겪었거나 여전히 위험과 갈등이 산재하는 방글라데시, 베트남, 필리핀, 독일, 크로아티아, 소말리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한국 등 15개 국을 찾았다. 그곳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먹는 사람들, 침샘을 자극할 정도로 활력이 넘치게 먹는 행위에 열중하는 사람들, 민족과 종교도 어쩌지 못하는 맹렬한 식욕의 굶주린 사람들, 전쟁의 공포에 짓눌려 식욕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에 밀착해 들어가 그들이 간직해온 이야기와 기억을 나누어 받아먹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함몰된 풍경을 끝까지 추적하는 기자의 본능적인 감각과 작고 미미한 것들을 읽어내는 작가의 섬세한 눈길이 결합되어 있는 책이다. 그 덕분에 너덜너덜한 인간세계 의 풍경에서 저자가 포착한 ‘먹는 인간’의 모습은 애잔하고 슬프지만 풍요롭고 아름답다. 저널리즘과 문학이 아름답게 결합된 책으로 여행기나 취재기를 넘어서는 오묘한 빛과 질주하는 힘, 그리고 팽팽한 긴장이 담겨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1장 가난한 아시아의 맛

# 방글라데시
먹다 남은 음식을 먹다
음식의 한

# 필리핀
피나투보에서 잊혀 버린 맛
인어를 먹다
민다나오 섬의 비극

# 타이
음식과 상상력
위장의 연대

# 베트남
쌀국수의 사회주의
베트남의 은하 철도

2장 갈등하는 유럽의 맛

# 독일
담장 안의 식사
음식과 네오나치

# 폴란드
숯검정을 먹다
패자의 맛
서커스단의 의미 있는 공복

# 크로아티아
보리수 향이 나는 마을
다양한 식탁
생선을 먹는 다정한 사내들

# 세르비아
성스러운 빵과 권총

# 오스트리아
대관람차 안의 식사

3장 뜨거운 아프리카의 맛

# 소말리아
모가디슈의 불볕더위 일지

# 에티오피아
아름다운 커피 로드

# 우간다
바나나 밭에 별이 쏟아지다
왕의 식사

4장 얼음과 불이 빚은 혼돈의 맛

# 러시아
병사는 왜 죽었나
첼로를 켜는 소녀
아름다운 바람이 부는 섬에서

# 우크라이나
금단의 숲

5장 가깝지만 낯선 한국의 맛

# 대한민국
유생에게 식사 예절을 배우다
27번 선수의 고독한 싸움
그날의 기억을 지우려고

맺음말
문고판 맺음말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