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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책은 네 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에선 다양한 통계를 제시하며 우리가 얼마나 불평등한 세상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 이것이 최근에 초래된, 유래없는 상황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의 통계도 제시한다. 아주 짧은 2장에서는 우리가 이런 불평등한 상황을 감내하는 이유로 ’부정의의 교의’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부정의’라는 것은 영어로 ‘unjustice’이며, ‘교의’라는 뜻은 암묵적으로 지지된다는 뜻이다. 3장에서는 대표적인 ‘부정의의 교의’ 네 가지를 소개한다. 첫번째는 ‘경제성장은 ...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두번째는 ‘영구적으로 늘어나는 소비...는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세번째는 ‘인간들 간의 불평등은 자연적인 것이다.’ 네번째는 ‘경쟁...은 사회 질서의 재생산과 사회 정의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이런 사회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삼을 것을 촉구하면서 끝낸다.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잃다가 식상해서 이 책으로 왔다. 여전히 식상하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충격이 있었을까? 불평등에 대한 통계는 이제 너무 익숙해,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통계들은 동어반복이고 중언부언하는 느낌이다. 사실 ‘불평등’의 양적 편차에만 집중하고 있지, 상위 1%가 그리 많은 부를 가져가는 것이 왜 ‘부정의’인지는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래 이렇게 불평등이 만연한 세상에서 살고 있어, 라는 진단 뒤에 나오는 대안이 너무 허망하다. 아, 불평등과 그 대안에 대해서 정말 이 얘기 밖에는 할 말이 없나, 싶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부자 중에서도 최상층은 더 큰 부자가 되고 있다. 반면 중산층은 공동화되고, 가난한 사람은 날로 늘어난다. 사회적 기회는 더욱 기득권층에게 몰린다. 불평등. 이제는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공동의 숙제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된다.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도움이나 추진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외적 자극이나 압력, 충격 같은 것도 필요없다.

바우만에 따르면, 지금의 불평등은 이전의 불평등과 질적으로 다르다. ‘20 대 80의 사회’는 이미 철 지난 이야기다. 오늘날 전 세계 최고 부자 20명의 재산 총합이 가장 가난한 10억 명의 재산 총합과 같다. ‘0.1 대 99.9’의 사회라고 말해야 더 정확하다. 그런데도 불평등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는 없고, 불평등의 찬가, 현실 긍정의 찬가가 유행한다. 우리는 애써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마트에 가서 웃으며 물건을 사고 백화점에서 대기업이 유혹하는 상품을 바구니에 담기에 바쁘다. 불평등의 희생자들이 오히려 불평등을 옹호하고 평등의 외침을 비웃는 이 기이한 현상은 어떻게 된 일인가? 불평등의 희생자들이 왜 불평등에 동의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변화와 불평등에 대해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판단하고 꿰뚫어본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보단 오히려 철저히 지금의 모습에 집중한다. 섣불리 희망을 노래하지 않고, 쉽게 현실을 인정하지도 않지만 어떤식으로든 문제를 회피하지 말라. 그리고 손쉽게 타협하지도 말라. 그리고 사유하라. 바우만의 강렬한 메세지는 우리에게 무언의 깨달음을 던져 줄 것이다.


들어가는 말

1. 우리는 오늘날 정확히 얼마나 불평등한가?
2.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3. 새빨간 거짓말, 그보다 더 새빨간 거짓말
4. 말과 행위 사이의 간극


옮긴이의 말